결국 모든 질문은 나에게로 온다. 나는 왜 사는가, 나는 이 인생에 지금 어떠한 고삐를 가지고 살고 있는가? 그리고 하루하루 건너가고 있는가.
니체가 말한 ‘허무주의’가 나에게도 있었고, 반야심경의 ‘공’도, ‘본무자성’ 즉, 원래 그러한 성질을 갖지 않는다는 핵심적인 정의를 피상적으로만 이해하다보면 역시 인생은 허무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실제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게 되기 때문에, 수동적으로 인생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런데, 반대로, 내가 모든 세상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내가 어떻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가가 세상에 영향을 미치고, 그렇기 때문에 능동적으로 하루하루를 보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는 걸, 나는 왜 몰랐을까.
나의 고삐는 한국 창업자들이 전 세계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는 기술 회사를 만드는 걸 가속화 하는거다. 그 플랫폼이 카본블랙인거고. 그 고삐를 쥐고 일단 건너가보려 한다. 그리고, 윤제와 재영이와 건강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도.. 더할나위없는 나의 우선순위지.
마지막으로.. 종교에, 경전에 매몰된 자들에 대한 저자의 날카로운 지적에 어머니가 생각났다. 어머니는 반야심경을 몇 십년 째 외우고 계신데, 그 끝에 본인이 있는지, 본인에 대해서도 여러 질문들을 던지고 고민하는지 궁금해졌다. 마음이 편해지는 용도로 매몰되지 않기를 기도해본다.
결국 모든 질문은 나에게로 온다.